4만원짜리 인생

한달이 지났다.

여느때처럼 주말아르바이트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사장님께서 일찍 들어가라고 배려를 해주신 날이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에 다달았을때, 나는 보통때처럼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후문으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어딘가 기인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동대문까지 걸어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실례가 안된다면 이시간에 동대문에 걸어가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그와 나의 만남은 시작 되었다.


차림새를 보니 아무리 봐도 홈리스가 분명한데 그의 눈에선 광채가 나고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무게감이였다. 길거리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양복입은 아저씨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바로 그것이였다.

경찰서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많이 상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곳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 찾아갔었고 그들의 대접에 대해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당당한 대한민국에 시민으로서의 도움의 권리에 대해 그들은 민중의 지팡이의 역활을 충실히 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 강동부근에서 부터 우리동네까지 건너왔다고, 발에는 물집이 잡혀 많이 괴로운 듯한 어필.

돈 만원 드릴테니 동대문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현금지급기는 닫혀 있었다. 그래서 난 현금지급기가 되는 곳까지 집을 문전에 두고 돌아가야 했다. 그는 물집으로 괴로운 발을 이끌고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이는 43, 현재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imf때 직장을 잃었다. 그 후 일용직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목수로서 일을 하고 지낸다. 집은 파주이며 아버지가 살아계시며 교육자로서의 생을 보내셔서 무척이나 엄격하시다. 어머니는 작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살아가면서 가장 큰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오늘 이렇게 내가 된것은 야간 작업을 나갔다가 끝나고 현장리더가 술한잔 하자는 것을 뿌리치지 못해서 이다. 몇잔하고 겉옷을 벗어두었던 곳으로 갔더니 지갑이 없더라. 그곳엔 일당 8만 4천원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천호대교에서 동서울 터미날까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다. 동서울 터미널에 이르러서 돈을 뽑는데 그가 말을 했다. 4만원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내가 내일 꼭 입금해 주겠다.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아무리 늦어도 집에 들어가야 할꺼 같다.

그래서 4만원을 뽑아주었다. 영수증까지 손에 꼭쥐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말을 하였다.
“내가 이돈을 안값는다면 난 4만원짜리 인생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난 내 삶이 그정도 가치밖에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인연도 인연인데 다음엔 한번 밥이라도 같이 먹읍시다.”
그의 눈의 광채는 더욱더 심해졌고 동작엔 기품이 넘쳤다.

그가 택시를 타기전에, 나는 그에게 말을 건냈다.
“동전 있는 것 좀 빌려주세요.”
그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다 나에게 주었다.
4백원이였던가.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내일 연락하겠노라며.


날 아는 사람들은 그 평범한 한마디를 하기도 기가찰 일일 것이다.
애시당초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족한 사람이기 전에 동정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없는 사람이니깐.

“너 바보냐, 미쳤냐”
“짠돌아, 나한테 쓰지”

4만원은 나에게 하루 바이트하는 것과 같은 돈이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나면 나오는 돈 말이다. 그리고 그 날도 나는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였으니 그날 번돈을 그 사람에게 다 준것이다. 사실 처음 만남부터 그의 처지는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새벽 2시에 한 사람을 만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을 뿐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4만원짜리 인간으로 나란 사람에게 지워질떄까지 남을 것이다. 누구의 의심처럼 모퉁이를 돌아 택시에서 바로 내렸을 지언정, 나는 그 한 사람의 인간에게 4만원치의 무언가를 주었다. 어디가서 술을 사먹든 밥을 사먹든 그 돈을 다 쓰는 시간까지 그는 배가 부를것이고 소비자로서의 정신적인 충만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에 구세준 냄비에 단돈 1000원도 넣지 않은 자신에 대해 반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그 4만원은 부모에게 한끼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고, 친구들과 기분좋고 유쾌한 술잔을 기울 일 수도 있으며, 2000원짜리 조조 영화를 20편을 볼 수 있다. 만원의 행복을 양쪽출연자에게 1주일이 아닌 2주일동안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도 줄 수 있다. 그가 가져간 4만원은 딱히 배추잎 4장이 아닌 많은 여러가지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으로 할 수 있었던 일에대해 오늘도 잊고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난 밋밋해져가는 생활에 충분히 내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던 수업료로서 지불했다. 돈을 건내준 순간부터 그 돈을 받느냐 안받느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근 한달이 지나는데 연락이 없다.

나는 그가 간곳을 10초간 바라보고 다음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수중엔 1900원이 있었고 기본요금은 그것보다 비싸다.
“아저씨 제가 사실 돈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돈 되는데로만 가주시면 안될까요. 몸이 좀 안좋아서요. 사실 제가 아까 어느 아저씨를 만나서 4만원을…파주에…어쩌고저쩌고”
그 아저씨는 아파트 단지까지 2300원이나 나왔음에도 그냥 돈만 받고 데려다 주셨다.

“그래도 자네같은 사람이 있으니깐 따뜻한 세상아니겠어?”

과연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확신한걸까.
아니면 택시비를 깍아준 자신에 대한 무언가 필요한 것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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