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잔에 담아.

요즘 술자리에 가면 한번씩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 잔을, 첫 모금을 즐겨보자.

남들보다 살아오며 많이 마신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술을 마신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보다 고등학교때 술을 더 마시고 대학교때 덜 마셨을지언정 그 양에 의한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무엇무엇을 할줄 아는 나이에 대해 무수히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니 나이때는 몰라” 이 말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내가 아는 것이 진리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란 전적으로 개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게 됨으로서, 나이가 불어나면 불어날 수 록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나이는 시간이란 세월을 말하기 쉽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한해를 365일 정도로 규정해놓고 한살 한살 세어가며 지나가는 것이다. 시간에는 내가 해왔던 모든 행동과 느낀 감정이 섞여 있다. 고교시절 물리책처럼 대충 엇비슷하다고 말하기엔 이제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중요한건 나이게 아니라 보낸 시간임을.

한때는 맥주가 술이나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원샷으로 마셨던 때도 있었다.
한때는 소주 첫잔이 달달하면 “오늘 위험하겠는걸” 이라며 웃음짓던 때도 있었다.
한때는 술의 고급화를 선언하면서 “이제 소주 맥주 안먹어, 양주와 칵테일만!” 이던 때도 있었다.
소주 4병에도 정신이 말짱한 때도 있었고 맥주 반컵에도 이리저리 휘둘린 적도 있었다.
이렇게 지나고 지금에 와서야 그것들은 모두가 나의 교만이었음을 인정한다.

술은 한결같았다. 내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해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제서야 난 그녀를 마주대할때 내 사설을 늘어놓기전에, 이야기를 듣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술이던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마시던 술이나 새로운 술이나 나의 음주는 첫잔의 대화에서 시작을 한다. 그것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에겐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난 첫잔은 조용히 술과 대화를 한다. 아니 그것은 대화(talk)가 아니라 술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say)다. 항상 나의 지금 상태에 대해 내 자신보다 더 진솔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반갑다. 오늘은 이정도만 마시면 좋을꺼 같다는 유익한 정보부터 내가 그녀를 또 왜 찾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그것으로 나는 다음잔을 들이킬 수 있다.

어머니는 내게 말을 한다. “너는 체질이 아빠 체질이라서 술을 마시면 안되는거 알지?”
그럼 이렇게 대답을 한다. “속체질은 아빠 체질인데 마시는 체질은 엄마 체질인걸 어찌하리오.”

첫잔을 사랑하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마셔보면 헤어날 수 없는 맛을 지닌 바로 그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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