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흘러가는 중이다

지난 2월 마지막 날 새벽에 전해들은 세 모녀의 자살은 굉장히 날 슬프게 하였다. 죄송하다며 월세를 봉투에 넣어두고 세상을 등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면 할 수록 가슴은 찢어졌다.

이 이기적인 사회를 어찌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명박 뽑은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이명박 뽑고 박근혜를 뽑은 인간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갈 자격이 없다.” 는 것이다. 철저한 자신의 개인적 이익만을 대변하는 상위계층부터 ‘신’처럼 떠받드는 무지랭이들까지 그들에게 “자유” 라는 단어의 가치는 돈으로 귀결되는 천민자본주의 뿐이다.

우리가 용산참사와 쌍용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내 이웃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의 횡포로 부터 나를 지켜줘야 할 국가가 배신을 하고나면 기댈 곳은 있는가.

비정상적인 자본의 수직관계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경하는 이상으로서 삶의 목표가 주어지고 생의 도착점이 되어버린,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추구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너와 나의 사회속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배와 같다. 아직 채 가지지도 못하고 피지도 못한 죽음이다. 분노하고 또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오늘도 흐른다.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의미조차 희미한 친구들에게 “좌빨”로 불리던 나의 의지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라졌다. 51.6% 지지자들에게 묻는다. 너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돈은 아이들을 구해낼 만큼 충분한가. 외면하지 말고 당신이 던진 표에 너는 책임져라.

매일 매일 산다는 것은

누우렁이를 타고 다닌지 벌써 두 해가 넘었다. 4월에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이륜차 면허증을 따고 주변의 만류에 구입을 고민하던 그 때였다. 배가 가라앉고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했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로 매일밤 설쳤고 행여나 구조소식이 있을까 미디어만 바라봤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바이크를 사기로 결정했다. 한 번 뿐인 삶, 하고 싶던 일에 집중하자며.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러진 사람을 마주했다. CBR125 검정색 옆에 누워 있던 그 사람 옆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지나가던 다른 라이더들이 도로를 통제하여 추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였다. 나도 비상등을 켜고 그들을 도왔다.

평소에도 지나가면서 위험하다고 느끼는 길이었다. 갑자기 생긴 유턴장소임에도 유턴신호등 조차 없는, 그래서 밤에는 더 위함한 곳이다. 말을 들어보니 운전자가 넘어오는 차들을 확인안하고 유턴하다 마주오는 오토바이가 속력을 급하게 줄여 잭나이프 했다고 한다.

부딪혀 날아가거나 튕겨나간게 아니라 외상은 보이지 않고 의식도 있어 보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119가 도착하고 이송을 돕고나서 다시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바이크를 왜 타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의 1번 대답은 편해서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매우 편하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탑박스를 달고 다니는 것은 내가 편하기 위함이다. 가끔 잠깐씩 내려 놓을 때마다 너무너무 이뻐서 두고 다니고 싶어지만, 역시나 있는게 좋다.

두번 째 대답은 자유로움이다. 정신적 자유고 뭐고 나발이고 이전에 언제 어떤때나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답은 바이크를 사게 된 계기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 당시에 큰 위로가 되준 이유다.

마지막으로 세번 째는 늘 생각하는 일이다. 코너를 돌 때마다, 그립을 움켜쥘때마다 넘어진다면 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한쪽 팔이 날아간다면, 오른 발목이 찟겨진다면, 목뼈가 꺽인다면 그렇게 죽는다면 난 무엇이 무서운가. 장애를 가진다면 그 넘어진 순간을 끊임없이 기억해내며 매 순간 자책하겠지. 나를 지켜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끝까지 말리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하겠지. 그래도 나는 괜찮겠는가.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자신에게 되세기는 일이다.

 

매일 매일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죽지 않은 것이라는 것. 먼저간 이들에게 전할 순 없지만, 내가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