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

간밤에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았다. 요 몇일 전에도 운전하는 도중에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아서 큰일은 안났지만 날뻔했을지도 모를 일이 있었는데 같은 증상이었다. 근데 그때는 조금 지나고 Naskaz의 우정의 냉면드립이 있은 후에 괜찮아 졌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혹여나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것인가 싶어서 빵을 급하게 주워먹고 또 먹었던 빵이 채한건가 싶어서 토해내기도 했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 가만 앉아 있었더니 얼굴에선 식은 땀이 흐르고 침대에 누웠더니 온몸에 한기가 들어 춥다. 한 여름 밤에 창문닫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자니 흉흉한 시국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신종플루의 증상이 뭔지 곱씹어 보다가 고열 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식은 땀 나는게 열이 나서 그런건지 아닌건지 알수도 없고, 발병한지 하루만에 저 세상으로 떠날 수도 있다는데 내일 아침에 내가 딱딱하게 식은 시체로 발견 될 것을 상상하자니 엎드려 있던 몸을 곧곧이 세우게 된다. 놀다가 아프다고 징징댄다고 구박하던 엄마가 날 보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를 할까, 눕기전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던 친구들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죽으면 바로바로 올 커뮤니케이션은 몇이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다가 한가지 빠진 점을 깨달았다.
죽기전에는 주마등이 지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슝슝슝 넘어가는 기분이 없는 것이다. 컬러 텔레비전의 노예 세대 답게 혹은 독서를 나름 많이한 지성인(..) 답게 머릿속에 쌓인 이야기에 따르면 주마등! 은 죽기직전의 필요 요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가끔 고요하게 잠들다가 가시는 분들도 있다보니 흠..하는 잠시의 생각의 끊음에서 벗어나 ‘아…오늘은 내가 죽을 날이 아니구나, 그냥 이대로 잠들고 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과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안하던 운동을 했더니 몸이 ‘이러지마!’ 하고 신호를 보내는 거구나.
주마등을 한번 겪고도 살아난 사람들은 보통 성실해 진다고 한다. 삶에 대한 애착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난 못 보았음으로 오늘도 제자리.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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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DJ 는 전신 분해 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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