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의 팔레스타인 리포트.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편 122편 6절
도대체 종교에 심취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예루살램을 두고 피튀기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 할 수 없다. 쫓고 쫓아내고 하는 그 관계는 톰과 제리처럼 가볍게 비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집에 누가 들어와 “여기가 내집이니 나가라”며 때리는것에 대해서도 비교해 생각할 수도 없다.
영토문제라는건 이미 우리나라도 당면한 문제이자 과제가 있다. 독도라던지 간도라던지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종교를 둘러싼 갈등은 어떻게 내가 바라봐야 하는 걸까. 하마스에서 말하는 “순교를 통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믿고 “난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 홀로코스터에서 살아남아 배를 타고 이스라엘에 와 총을들고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사람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과격한 사람들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는 거다. 내용면에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결국 사람흉내를 낸다는것 정도로 생각이 든다. 서로 전쟁을 하고 피를 흘리지만 착한(?) 시민들끼리는 어짜피 서로 슬퍼하고 아껴준다. 무슨 운명의 굴레가 너와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냐는 듯이, 그저 아픈 사람들은 아플뿐이고 때리는 사람은 신났을 뿐이다.
사진은 시간을 기록한다. 글이나 말이나 사진이나 영상이나 사람이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있는 것들은 그 작성자의 감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나같은 청자, 독자, 혹은 목자들의 역활이기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느낀다.
피로 얼룩진 자기집 계단 사진찍는 것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그 피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피일지도 모른다것을 알지 못하는 커다란 눈동자에서.
눈을 뜬채로 매장되는 아이의 눈에서.
죽을 때 벽에 선명히 찍힌 피로 묻혀진 손바닥을 남겨놓고 간 자욱을 보며.
빗발치는 총탄 속에 폐허로 변해버린 집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에서.
세손 잡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의 웃는 얼굴.
제기랄 그땅에 핵폭탄 떨어트려서 지도에서 없애버리면 망할 유대교 천주교 이슬람교 안싸우겠지. 신이 내린 성지에 신과 교신할 수 있는 곳이 없고 핵을 날려 주변다 지구를 다 오염시켜 버려서 다 죽어버리면. 더이상 안싸우겠지.
격해진다-_- 믿지도 않는 종교때문에 너랑 나까지 죽을껀 없는데 말이야-_-.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