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사는 곰

미술관 옆 동물원에 갔다가 정상 부근에 있는 곰을 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오고 우중충하더니 완전히 날이 풀려버려 뜨거운 햇볕아래 모든 동물들이 그늘을 찾아 늘어진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곰들은 달랐다. 멍하지 앉아서 발이 닿지 않는 거리의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 있기도 하고 어슬렁 거리며 돌기도 했다. 해자만 없었 다면 간식거리들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고…(하필 어제 밤에 읽은 글이 이것…일본의 산케베츠 식인 불곰 사건)

그런데 곰 3~4종류 10여 마리 중에서 딱 한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온천을 즐기는 듯, 더워서 시원한 물에 들어갔겠지만 자세가 그러해 보이는 불곰 한마리다. 이제 좀 일어나야지 하면서 물 밖으로 나오다가 다시 주저 않고 망중한으로 앉아 버린다.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리듬을 타는 듯 하다 다시 일어나 몸을 2/3을 꺼내놓고 있는 몸통을 보니 물로 인해 털이 찰싹 붙어 얼굴만 떠 있는 듯 하다. 그리곤 나오는가 싶더니만 다시 주저 않고 먼 곳을 바라본다. 이 녀석을 보니 지금의 나를 보는 듯 하다.

아직까지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나가야 했던 시절에는 일어나는 것이 말 그대로 ‘일’이었다. 밤에 잠을 자던 안자던 정해진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것은 일종의 과제었고 규칙은 지키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왠만해서는 누가 건드릴 일이 없다. 오전에 미팅을 잡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고(왠만하면 그렇게 만들지 않지만) 작업을 시작하는 시간도 끝내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아빠마저 부러워 할만한 삶을 살지만 나름 대로 또 고충이 있다.

출퇴근할 시간도 장소도 일정치 않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숨쉬는 곳이라면 일하는 공간이자 시간이 된다는 것. 집이 쉴 공간이고 침대는 몸하나 뉘일 공간이라면 그 모든 것은 일터라는 것이다. 신경은 늘 곤두서 있고 멜라토닌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아는 사람들은 오후에 보통 연락들이 오지만 또 새로 만난 사람들이나 일거리들은 오전 10시~11시 사이에 연락이 자주 온다는 것-방해금지 모드를 만들어주신 애플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해온, 물론 세부 계획 따윈 없지만 꼭 가고 말겠다던 여행은 미뤄지고 나니 저 곰 같아 진거 같다. 누가 춤추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니 춤출 필요는 없고 구경꾼들이 왔지만 굳이 쳐다보고 호응해 주진 않으며, 귀찮다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나와서 일은 하고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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