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de Park in Sydney

어렸을 적 호주에 여행을 간적이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었는데, 마지막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심은하를 만나는 턱에 기억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기억만큼은 뚜렷한데, 그곳이 바로 하이드 파크였다. 왜냐하면 그곳을 찾아가기전에 꿈에서 그곳을 미리 보았었기 때문이다. 데자뷰라고 해야하겠지. 큰 나무들이 모여서 길을 만들어주고 그 끝에 있던 분수,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났던 그곳 역시, 기억안에서 아름답게 남아있었다.

다시금 시드니에 도착하자 마자, 오페라하우스 보다 먼저 찾아간 그곳이 바로 하이드 파크였다. 다시 만난 느낌은,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곳은 굉장히 큰 곳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미국의 큼지마한 나무들을 본 기억이 남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뀐 기분만큼이나, 난 기분좋게 하이드 파크를 대할 수 있었다. 관광지로서 찾았던 그곳을, 심심하면 찾아가서 낮잠을 자고 오는 곳이 된 것이다.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일을 하기 전까지 낯선 시드니에서 반갑게 날 맞이해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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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엔 전쟁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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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주욱 따라가면 분수대가 보인다. 큰 나무들이 문지기처럼 나열한 이길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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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오면 정면에 보이는 것은 Hyde park 의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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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de park 의 상징인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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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주변으로 놓여있는 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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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주욱 올라오면 우측 편에 보이는 st. mary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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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ry 성당. 니콜키드만과 톰크루즈가 결혼했다고 했던가.


하드에 있는 사진들은 보니 온통 밤에 찍은 것들 뿐이다. 사실 이것도 찍으려고 해서 찍은게 아니라 촬영 때문에 현장답사하느라 찍어놨던 것. 너무 편하게 다니던 곳이라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매일 가는 곳처럼 남기고 싶었었다.

 낮의 사진들은 많은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을테니 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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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AC DAY에.

ANZAC Day의  ANZAC 는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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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에 편입되어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ANZAC 군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 은 그 당시 유럽을 거의 점령했던 막강한 독일의 동맹국인 터어키쪽으로 전투에 참가 하고 있었습니다.

유럽대륙의 거의 전부를 점령했던 독일군의 배후를 치기 위해서 터어키를 경유하는 전술을 택했던 연합군은  ANZAC군 에게 터어키의 갈리폴리로 상륙하여 연합군의 교두보를 마련하라는 작전명령을 내립니다.

4월 25일 새벽 갈리폴리에 상륙하려던 ANZAC군과 터어키군 사이에 엄청나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여기서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 약 2300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로 이 날이 호주 뉴질랜드의 공동 현충일의 시작입니다.

Article From “http://www.hojunews.com/cgi-bin/read.cgi?board=bbs&y_number=636&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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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올해의 공식적인 연휴는 이제 없을 듯하다.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도 법정공휴일은 아니다. (그래도 논다고 한다;) 달력을 뒤져봐도 빨간날은 이제 없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어제 다음날이 안작데이라고 12불에 무려 4리터나 하는 와인을 사서 하우스의 사람들이랑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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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위)규진이형, 정민 (중간)나, 준태형 (아래)병준이형 - 현재 하우스 사람들.


술이 좀 과했는지, 마지막 잔을 원샷을 한 이후에 방으로 돌아와서 방돌이인 규진이형과 횡설수설을 하고 메신져까지 했다. 그리고 어딘가엔 알 수 없는 언어로 -지금도 해석이 불가능한;- 글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지금 보아도 도통 무슨 내용인지 해석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왜 그랬는지는 과거에도 있었던 경험이기에 알수 있다. 그것은 내가 그 글에 그 내용에 관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혹은 배설- 때문이다. 어떠한 내용을 썼었는지 필름도 안끊겼는데 기억을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를 적어 ‘두고’ 또 앞으로 가기 위한 일이 였을 것이다.

과거에는 바른 글씨로 나중에 읽어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한다.
-지금 모르는 내용에 대해 궁금해 하지 말자.-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기억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