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
오늘도 먼가 신이 난듯 글쓰기에 대한 과거드립을 쳤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과정중 까뮈의 이방인을 읽기 전까지 다독상을 놓친 적이 없었고 고교 리즈시절엔 방송중계 조회!엔 거의 계속(맞나) 나가서 교장한테서 얼빠진 자세로 상장을 받아오기도 했다. ‘모두가 예상하던 문과를 안가고 이과를 선택해서 예체능으로 끝을 맺는’ 이 이야기는 뭐, 얼빠진 이야기라고 할만하기도 하지만 if가 존재한다면 엄마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포함되어 있는 장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2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보통의 경우에는 풀기가 쉽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대화하기가 꺼려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아…짧게 말하면 말못할 고민 같은 것! 신체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말 못할 고민 같은 경우엔 그냥 병원이라는 대나무 숲에 가서 주사 맞고 털고 오면 되겠지만, 심리적인 문제는 참 어렵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이고 이러한 방법에 이 사회에서 자란 -의사소통에 대해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기를 내어 놓는 것보다 더한 일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3
한때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내릴 때(..리즈시절)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을 쓰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글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과의 소통이 가능함을 깨닿는 다면 그러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한발자국 뒤에서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물론 이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도 즐겨 쓰던 방법이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는 좀 더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

#4
글이라 하면 이미 난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자로 치는 것이 익숙하다. 또래들보다 더 빨리 워드프로세서를 익혔고 그들보다 더 빨리 숙제를 프린트 해서 가져갔다. 그리하여 몇년간 독학(..)을 통해 쌓은 워드프로세서를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분개 했던 기억이 있다(..) 제출 할때 표지를 만든다고 paintshop을 이용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파일로 글은 저장은 하는데 아웃풋은 인쇄를 해가야 했었는데 요즘은 pdf로 제출하면 되는가 모르겠다. 만약 아직도 프린트를 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허허허 웃지요. 궁금하네.





글을 쓰는 공간도 달라졌고 방법도 달라졌다. 메모가 중요하다고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라던 사람의 말은 습관을 들이라는 본질적인 단어를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떠오르는게 있으면 아이폰을 열고 메모에 적는다. 하다못해 잠자기 전에 글쓸거리가 생각났다고 일어나 정자세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지도 않는다. 그냥 아이폰을 열고 글을 적는다. 낮에 엄마를 위해 프린터 잉크를 사러 테크노마트에 가는데 프린터 기종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찍어야 한다는 개념이 먼저 떠올랐다. 그냥 사진으로 찍어가서 가서 읽어주거나 보여주면 끝이니 그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못느낀다. 블로그는 힘들다. 로그인 하고 클릭 몇번을 해서 들어와야 하는 이 공간은 불편하다. 짧은 글을 쓰게 될 때 내가 웹 상에 혹은 나를 위해 할당된 페이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편함을 주는 블로그보다 140자 이내로 정해진 규격의 트위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하다.


아무튼,
요즘 글쓰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요즘 나도 형아도 블로그에 글을 안쓰네 하고 엄마가 말했다. 나이는 들었는데 생각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못해진 듯 하다. 굳이 핑계를 데려고 머리를 굴려보면 망할 개똥씨발좆같은 군대 이후인듯 한데, 치열해야만 삶이 굴러가는 줄 알았던 그 때, 대충해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게 아니라 그런 근성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랄까나. -실로 2년의 세월은 기억도 잘안나지만 참으로 거지 같은 시간들이었다 고만 기억된다- 지금도 군대를 어떻게 하면 더 자세하게 병신같은 곳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젠장.


아무튼2,
하품하느라 입찢어질 것 같으니 집행유애! 벨소리 집어넣고 잠시 이 글쓰기는 유예!


글과 그리고 글

글쓰는 일이 뜸해졌다. 이는 최근들어 깊게 생각하는 일이 뜸해 진 것과 거의 일치한다. 또한 핸드 북을 가지고 다니며 적거나 스캐치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과도 거의 일치한다. 하루종일 드라마만 보고 있어도 드라마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방금 30rock 시즌3를 하루에 다 봤다고 해도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잊을 것이란 것이다.(미국 시트콤이기 때문이지! 라고 핑계대고 싶다!!)

굉장히 오래라고 쓰려고 했었는데 그리 오래동안은 아니었을지 모를 글쓰는 공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켜볼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다시는 생각할일이 없겠지라고 느꼈던 혹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살 수 있을 꺼라고 믿었던 자만심에 의해 사라져 버린 내 과거였다. 컴퓨터로 인터넷이란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할 만큼 클릭 몇번으로 없어진 기록이었다.

남기려 했던 백업파일은 내가 기억하는 한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못하고 맥북에서 맥북프로로 옮길 때 사라졌다. 패러럴즈에 있던 8기가정도 되는 대용량 파일시스템을 FAT외장하드에 백업할 수 없었던 탓이다. 물론 그 파일안에 그 파일이 들어가 있었을 줄은 한참 후에나 깨달았지만 말이다.

그 덕에 글쓰는 일이 줄었다. 생각하는 시간이 짦아지니 앞뒤옆으로 길고 넓게 펼쳐져있던 생각의 범위가 줄어들었다. 아무리 귀중했던 물건이라도 시간이 지나서 지금 쓰고 있지 않고 잊혀져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일주일이면 잊혀질 단편적인 느낌과 지식들을 남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슈퍼킹(패밀리게임기카피머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원을 넣고 패드를 누르지 않는다. 안테나 케이블로 티비에 연결하던 그것 대신에 Wii가 비디오오디오 케이블과 위핏 위에서 눈차크를 휘두른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다 그런 것들이다. 아무리 아껴도 모든 시간을 안고 살 수 없는게 나였다. 새로운 것이 오면 그 전의 새로운 것은 끝나버려 있었다.(덕분에 끔찍히던 만화책을 똥탐할때 한권씩 꺼내가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손으로 글을 굉장히 오래 써왔다. 내가 황야를 걸을 때, 엄마가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짙은 녹색의 노트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장이라고 했었던가, 난 반항심99%와 1%의 호기심사이에서 읽지 않았고 곧 엄마는 그것을 버렸다. 얼마전 아빠의 퇴출 소식을 들으며 아빠가 입원해 있던 기간 동안 엄마가 썼던 노트를 찾아보았다. 다시 열어보는데는 실패했지만(버렸나..?!) 언젠가 내가 책장 정리 하다가 찾아낸 그 노트에서 본 엄마를 지금의 엄마가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들은 굉장히 오래된 개인의 과거의 기록이었었다. 쓰지도 않는 것을 손에 쥐고 등에 진 것을 놓아야 한다던 마음이 느껴 진다. 한 줄 읽어보지 않은 그 푸른 노트 안이 이제서야 궁금하다.

컴퓨터에 클릭 몇번에 지워졌다고, 점점 더 편해지는 세상 탓을 하는 내가 갑자기 우스워진다. 더 예전엔 불 펴놓고 한장한장 태우다가 노트 통채로 불안에 던져버리지 않았던가.(이러한 고전적인 방법으로 제대하자마자 외국에 나가서 안돌아와서 예비군 갈일을 없게 만들어 더 이상 군복을 안입고 한강변에 가서 군복을 태우리라 생각했으나 계획처럼 삶이 진행되고 않고 있다..)  그때는 글을 남기는 방법이 오직 쓰는 것이었고 태우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유일한 길이었지 않던가. 그리고 다음 날 찢어진 조각 찾으러 와서 뒤지고나 있고 말이다(드라마의 힘!)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2시절 내 첫 번째 핸드폰 스캔한 . 참 많이 집어던진 폰이었다. 그래도 참 튼튼했던, 미안한 녀석.


*외장하드가 옆에 보이길래 껴봤더니 1999년도 파일까지 있다..[..]

어제 본걸 일주일 후면 잊을텐데 그것을 위해 글을 써야 하야 할지 고민하며 블로그에 제목만 적어놓고 임시파일로 두는 일에서 벗어나야겠다. 질풍같았던 시절의 글들은 사라져버렸지만, 안고 들쳐보며 생각할 시간이 내가 살아가는데 스며들어 있지 않은가. ‘한발짝 뒤로 물러나 보자’ 그 동안 항상 되뇌이던 말인데 이번에도 한발짝 물러나는데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과 성찰 뒤에 다짐도 이어지지. 이래서 아직도 사람이 진화하지 못하고 팔과 다리에 한쌍씩 밖에 없는 건가보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