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서태지 팬이 아니었던 사람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팬이었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성욱이네 놀러가서 슬램덩크를 뒤적거리다, 신발신고 집에 가기위에 현관에 서서 문을 열려다 멍하니 티비를 응시했었다. 티비 속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인지……그간 있던 졸업식 노래를 good bye로 바꿔 부르자는 강력한 주장을 내세웠으나 의견은 관철되지 못하고 난 졸업식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었다. 이등병 시절에 서태지 앨범을 너무 듣고 싶은데 고참들 눈치 보일까봐, 엄마한테 붙이라고 해놓고 친구 이름으로 써서 마치 갑작스런 선물을 보낸냥 보이도록-하지만 우편에 온 글씨가 너무 엄마스러워서(..)-해서 가끔 몰래 들었다. 그게 마지막 이었다. 그 이후로는 딱히 주목하는 사람 없이, 그와 동시에 앨범구입도 줄어들고 노래도 repeat되곤 했다.
난 이번 주말에나 앨범이 나오는 줄 알았고, 그 때 가서 매장에가면 살 수 있겠거니 했다. 올해 ETP도 무척가고 싶어하지만, 돈이 없어서 GG치고 있지만, 실로 가고 싶은 이유는 맨슨 형이 온다고 해서였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서야 들은 발매 소식 그리고 매장이란 매장은 다 sold out. 주말에 패밀리가 간다를 보면서 ‘이거 뭐 이효리에 묻혀서 우리 태지형! 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난 그에게 실험적 음악 정신을 찾아 본적이 없다. 4집의 ‘널 지우려 해’ 보다 3집의 ‘발해를 꿈꾸며’ 가 더 좋았던 이유는 연애감정을 몰랐던 어린 나에게는 오히려 매년 그려야 했던 통일 관련 포스터 탓에 더 공감이 가는 것 노래였기 때문이다. ‘교실 이데아’ 를 곱씹으며 들었던 것은 이미 발표한지 한참이 된 고교 1년생일 때었다. rock을 좋아하게 된 것은 Metallica의 fuel을 처음 들었을 고교 1년생일 때다. 그리고 가장 신나는 rock은 나에게 크라잉 넛 이다.
2008년 지금, 난 서태지를 듣는다. 어떤 이에겐 세대를 추억해버린 과거형의 스타이기도 하고, 이제는 더 새로울 것이 없는 지나간 노래 못부르는 딴따라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서태지는 지나간 추억의 스타도, 새로운 음악을 전달하는 메신저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맘에 든, 거기에다가 참 맘에 드는 가사와 음을 만드는 그런 서태지라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전히 노래하는 서태지를 듣는다.
덧. 한가지를 덧붙이면 상업적인, 교활한 사업가라고 말하는 그의 면면은 정말 맘에 든다. 누가 이렇게 예고를 하고, 또 이러한 싱글앨범 마켓팅을 하겠는가. 4집 컴백홈 첫 번째 1위에 경합에 올랐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을 물리쳤던 R.ef 가? 서태지 100만장 팔때 200만장 팔았다던 조성모가? 앨범 케이스를 퍼런 색으로 물들였던 이지훈이?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가고 음반판매량보다 싸이월드 음악 다운로드 횟수가 중요해진, 노래는 듣는 것이 아니라 틀어 놓는 것이 되어버린 지금, 과연 누가 말이다.
공감합니다.
공감은 영감이라고도 하지요. (공=0=영)
저도 영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