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은 나에게 5일 이라는 시간을 더 주었고 370일의 시간을 주었다.
머릿속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일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기억의 파편이 날아와 나의 가슴에 꽂힐때 마다 그저 외면하기만을 했다. 가끔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사소한 일을 잘 잊어버렸다. 어느 날, 그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어디에 정신을 두고 다닌 사람 같다고, 찾는 게 어떠냐고 말이다. 사실 늘 애들이 하는 말처럼, 내가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제정신이 아니란 말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그 순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2개월 남짓, 나의 내 정신 찾기 여행은 마침내 찾아냈다.
2003년을 한마디로 말하면“난 행복했다.” 역설적인 상황으로 가득한 한해지만 돌이켜보고 지금에 와서 “난 행복 했다.” 라고 소리 칠 수 있다. 내 나이20에 가장 깊은 수렁에 빠졌었다. 아직까지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그땐 그랬지.”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 때보다 상황이나아진 것도 아니고 무언가가 다시 생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잃었던 내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고 시간에 밀리지만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 중간에, 정말 고마운 사람을 만났다. 미워할 수 없는사람, 미안한 사람. 지금은 내가 가장 끔찍하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과의 기억도 힘들었던 모든 시간과 함께 묻어버렸었다. 다잊었다고 생각했다. 묻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여전히 최악을 치닫고 있었다. 힘든 일은 겹쳐서 온다고 생각했고 좌절했다.그리고 고통을 묻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몸이 바빠지며 시간이지나갔지만, 어딘가 부족한 내 자신을 알아챌 수 있었다. 사소한 일들은 잊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지갑 – 이게 가장 심각했다- , 핸드폰, 안경 등등 손에 들고 다니는 것들을 잊어버렸다. 물론 어디 밖에서 잊어버린 게 아니다. 방금 지갑에서 돈을꺼내고 조금 있다가 꺼낼 때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각종 주머니를 뒤지고 가방을 뒤지고 나서야 찾곤 하고 안경은벗어두면 그 다음에 어디 있는지 헤맸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듯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어디에 정신을 두고 다닌 사람 같다고, 찾는 게 어떠냐는 수화기넘어 들었다. 처음엔 아무 성과가 없었다. 찾아야 된다고 강렬히인식되고도 또 잊어먹었기 때문이다. 다음 통화를 할 때쯤에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잊어먹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 나에게정해진 시간이 남아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회피했다. 무엇을 그리도 피하고 싶었을까.
사실 피하고 싶어서 피하는 일은 아니다. 다만 습관으로 -늘 그렇듯이- 잊고 싶은 일들은 그렇게 묻어버리려 했을 뿐이다. 그러는동안에 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도 같이 어느 샌가 묻어버리고 있었다. 그냥 묻어버리기엔 감당이 안됐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과 감정들…….
12월 말에, 다시 정동진을 찾았다. 그 사람과 함께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마지막으로 만날 준비를 하고 갔다. 3월에 혼자 왔던 그곳은 좀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을 이곳이지만,2003년과 함께 먼 길을 지나 도착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기차시간 여섯 시간 반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처음 엄마와당일치기 여행으로 왔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 가졌던 기대감과 실망, 이제 그런 기분을 지나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바위와 선물상점들을 보며 약간의 웃음을 지었다. 변하지 않는 풍경과 변하는 사람.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 다는 말이 머릿속에서맴돌았다.
바다를 다녀와서도, 달력으로 2003년이 끝나도 내 정신은 어디 두었는지찾을 길이 없었다. 남아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할일이 있기에 무턱대고 정신만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틈틈 생각으로 계속생각을 하게 되었다. 365일 하고 3일 아침이 다가오던 새벽, 잠에서 뒤척이다가 보통 때였으면 멈추었을 생각을 계속 하였다.그리고 마침내 내 정신을 두고 온 곳을 찾아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해답은간단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놓아둔다던 그 자리에, 난 내 정신까지 놓아두고 온 것이다. 모든 것 잊는다고, 금방잊어버린다고 말하는 나 스스로를 속이는 사이에 내 정신까지 놓아두었다. 사실 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휘발서 붕어대가리라고 말해도 올해 있었던 그 사람과의 모든 일들을 난 기억한다. 그 때의 기분과 느낌까지.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올해가 유난히도 짧게 느꼈던 까닭은 거기에 있었으리라. 머리와 마음속에 모든 것을기억하고 있기에 짧았던 것이다. 나의 방황의 시작은 그곳에 있지 않았지만 끝은 같았기 때문일까, 올해 같이 보냈던 시간은 그리길지 않았지만 일년 동안의 모든 기억속에 녹아 있는 그 사람.
지금 그 사람에게 말을 하라면 할 말은 이것뿐이다.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넌 행복해야해.”
여전히 최악이라고 말하겠지만, 믿지 못하겠다고 하겠지만 말야.
이글을 쓰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고 정리도 다 못했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에, 근 12시간동안 한글 창을 띄어놓고 이것저것하면서 생각을 하며 글로 표현 못하는 내안의 정리까지 끝냈다. 올해의 기준은 달력날자로 1월1일로 맞춰져 있지 않고 모레 있을군 입대로 맞춰져 있기 때문일까, 아직도 2003년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일이 지나고 나면 새해가 올 듯한 좋은기분에 들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