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발견

요즘 보는 드라마.
정유미가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공중파에서 보기 힘든 직설적으로 내뱉는 스토리텔링을 가졌다.(알고보니 케이블에서 로맨스가 필요해 작가라던)

어릴 때, 속된 말로 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귄 시간의 세배라고 했다. 한 달을 사귀었다면 세 달, 세 달을 사겼다면 아홉달. 그렇게 오랫동안(?) 사귀는 일도 많지 않았으며 일 년 넘으면 정말 큰 일처럼 여기던 그 때 말이다.

시간이 지나 어느 덧 서른이 넘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켜보며 저 때 생각을 돌아켜 보면 완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도 결코 허무맹랑함을 몰랐던 것이 아님에도 왜 저런 말들을 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헤어짐의 고통을 겪는 친구들에게 혹은 자신에게 이 끝없이 힘들게 느껴지는 고통이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알리고 숨통이라도 틔여주기 위함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련다.

아이러니 하게도 군 생활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군대에서 나갈 날자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휴가를 나가서도 훈련 중에도 그리고 제대 전날에도 그랬다. 정해진 삶이 주는 고통은 끝이 모를 괴로움보다도 힘든 그것이다.

최근 연애는 30년전과 다르다.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그리고 나서도 카카오톡에 친구로 뜬다. 헤어지면 끝이던 시절에서 싸이월드를 몰래 들어가보다 이제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클릭해보는 시대가 되었다. 잊으려면 눈에서 지워져야 하는데 도통 그럴 수가 없다.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이 주었던 물건들을 다 버리며 시작하라던 충고는 전화번호 카카오톡 차단하라고 한다.

모든 것을 던지지 못한 사랑엔 미련이 남는다. 나쁜 추억들은 옅어지고 좋은 추억들은 계절이 지나며 색단장을 곱게 한다. 내가 잘 해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더 선명해지고 못해준 것들은 짙어진다. 모든 것은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기 참 힘든 시절이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예전의 자신에게 관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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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었고, 좀 있으면 월드컵 결승전이 시작된다. 딱히 월드컵 결승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어린이 대공원 역에 있는 탐탐에 와서 스무디 한잔을 시켜놓고 한 시간째 뻐기고 있다. 그것도 1층에서…

서울에 도착한지 이제 4시간이 지났다. 10여일 정도 힘껏 달려 다시 도착한 나는 그 전과 조금 기분이 다르다. 그 시간 동안 공연을 3가지를 올렸고 한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일정을 가졌다. 오랫만에 다시 올라간 ‘마법사와 쫓겨난 임금’을 용극장에서 셋업하고 바로 제주도로 가서 ‘영영이별 영이별’을 공연하고 서울로 돌아와 찍고 다시 대구로 가서 ‘씽씽욕조와 코끼리 페르난도’ 를 올렸다.

 

그리고 난 지금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살다보면 여러가지 상황에 마주치고 이런 저런 감정들을 지나쳐 온다. 그러한 비슷한 상황의 반복과 어디서 느껴본 감정을 지나칠 때는 이미 적응하거나 무덤덤해졌다면 그것은 나이를 먹은게 분명하다. 경험의 반복은 우리에게 일정한 답을 가르쳐주고 대게 처음보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분명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인생의 파고의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점점 지루하게 만든다. 처음 설레였고 즐거웠던 일들은 ‘이쯤되면’ 이란 말로 반감이 되고 또 반감이 되고 마치 방사선량이 줄어들듯,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만 갈 수록 줄어들게 된다. 실증 잘 내기로는 1%의 상위권안에 들꺼라 자부하는 나에게 반복은 독이요, 정말이지 참기 힘든 일이다. 최근엔 공연이 그랬다.

공연장에 올라가는 것들은 안정성을 담보로 한다. 빵구가 나면 도저히 극을 진행시 킬 방도가 없는, 막다른 골목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배경영상이나 만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욕심때문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그게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속에서 긴장감이 점점 떨어지고 늘어진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최근엔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저런 제안들을 던져 놓고 있었다. 한 발 자국씩 때어놓고 가는 것이다.

마법사와 쫓겨난 임금을 세팅하고, 제주도에 가 영영이별 영이별을 하고 나니 대구에서 씽씽욕조와 코끼리 페르난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난 지칠데로 지쳐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프로젝터 설치까지 하려니…더군다나 에어콘도 틀어지지 않은 찜통은 정말 쇼킹했다. 제작도 하지 않기로 했던 공연이었지만 들었던 말과 다른 컨디션에 결국 제작, 그리고 돈계산에도 들어있지 않던 오퍼까지, 화수목금토일 내내 대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이로 말할 수 없는 더운날의 짜증폭탄주였다.

더군다나 나만 멘붕이 아니라 모든 제작하시는 감독님들이 그랬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이 들었을런지. 무대 제작을 일주일을 꼬박 새시고도 공연장와서 작업하시는 숙향감독님을 보니 불만조차 말 하기 힘들었다. 수요일에는 영상셋업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줄 알았지만, 이 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블라블라블라.

 

배우들의 열정과 감동적인 그리고 숙향감독님들 눈물과 땀과 인간미가 넘치는 팀파이팅(..)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은 무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으로 인해 감동을 주고 힘을 받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