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그리고 30년

내년 1월 10일은 우리 형과 둘째 형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될 예정 이다(이렇게 써놓으면 막장같다만…ㅋ) 이제 결혼 3일차의 부부가 된 것이다. 내가 군대 입대하던 날, 형아에게 메세지를 통해서 “형수님이라 불러” 라고 할 때부터 ‘언제 결혼하나’ 하고 간을 보았는데, 결국 나에게 휴가도 안주고!  호주에서 오는 비행기 값도 못받고! 딱 결혼식 날에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 난 몸만 가려던 계획은 철저히 무시되고 열심히 운전기사, 카메라맨, 혈육 그리고 광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은 엄마와 아빠의 29주년 결혼 기념일이 되는 날이다. 음력으로 친다면 거의 엇비슷한 날에 결혼을 한 것이다. 30년차에 접어드는 부모님을 보니, 과연 그들이 부부로서의 첫 날을 보내며 생각했던 것 들과 오늘 저녁에 자기전에 생각할 것 들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반평생 보다 더 오랫동안 끼고 살았던 자식이 하나의 다른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을 나로서는 당연히 헤아릴 수가 없다. 생각해 보려해도 어느 순간 내가 넘을 수 없는 큰 벽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것은 결혼을 결심하고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심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식을 끝내고 집에서 어른들의 뒷풀이에 빨간머리 이야기로 술 안주 하시길래 대신에 계란말이를 실컷 부쳐주었다. 꼬냑도 위스키도 꺼내오고 다들 죽죽 넘기다가 모두들 골아 떨어지고 호스트인 아빠, 엄마, 나 그리고 큰삼촌이 남았다. 그러다 엄마가 “이렇게 좋은 날, 우리 아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면서 운을 때며 눈시울을 적시니 큰 삼촌은 통곡수준으로 눈물을 쏟는다. 일찌기 할매를 보냈던 아빠의 위로로 하는 듯한 말이 나오고 다들 칭얼칭얼칭얼.
어른 셋이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릴 즈음에 난 엄청 슬퍼졌다.

야후, 다음을 광고하다

글쌔 왜 일까? 그것도 자사의 검색창 바로 옆 자리라니…포탈로서 치명적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자사의 페이지에 오래 남도록 하면서 트래픽을 유발해야 할 처지에, 그냥 광고주 페이지도 아닌 같은 업종의 경쟁 상대인 Daum의 이벤트 페이지를 연결하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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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들을 꼼꼼히 살피니 이러한 광고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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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한때 $108 이나 했었던 Yahoo..지금은..

한때 야후뉴스 폐인으로서 야후가 검색엔진의 짱인줄로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고 카테고리에 등록시키기 위해서 신청서도 쓰고 등록되어 맨 상단에 노출되어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요즘은 홈페이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봇이 찾아놓은 웹페이지를 찾아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알토란 같은 사이트들을 북마크 해놓고, 내 홈페이지도 그리 되기를 바랬던 마음이 컸었었다. 네이버는 듣보잡이나 쓰는 곳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군대가기 전까지, 그리고 휴가 나와서도 꿋꿋이 들르던 곳이기도 했다. 야후 메일은 첫 번째 중요 메일 주소로 옥션에도 등록해서 썼던 곳이기도 하였다. 비록 그 덕에 이제는 하루에 스펨메일이 몇 백개씩 쌓여있는 곳이긴 하지만…orz

바다 건너에서는 야후에 대해 암울한 소식들만 전해온다. 공공의 적 만수를 거부하고 구글님과 같이 빛을 보려던 계획은 구글님의 발빼기로 좌초하고, 이제는 주가가 떨어질 만큼 떨어져 만수가 주워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왠지 내가 주식 투자한 것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