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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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번째 물놀이, california beach 전경.

올해는 모처럼 바다를 일찍 다녀왔다. 캘리포니아 비치에 이은 두 번째 물놀이다. 원래 계획에서 날씨에 따라서 여러가지 수정사항들이 있었지만, 재미있게 지내다 온듯 하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이 서울을 벗어나 바닷가에 다녀오려 했지만, 엉덩이가 무거워진 탓인지 아니면 볍신이 된 것인지 그냥 있었기에 더 즐거웠었던 듯 하다.

출발 전날, 혼자 맥주 2000cc를 먹고 지하철 환승할 곳 지나쳐 내린 역에서 30분간 졸다가 집에 들어와 쓰러진 여파인지 출발날은 굉장히 바뻤다. 팀 제출 해야할 것 준비 도와주는 것과 내 개인서류 준비에 제출에 넣을 포트폴리오 DVD제작까지 우체국 마감시간까지 완료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출발 시간이 밤 12시에서 저녁 8시반으로 바뀌면서 제출한후 밥먹고 맥주한잔 할 시간없이 집으로 돌아왔었다.

해진 거먼 밤엔 장대비가 내렸지만, 롯데마트에서 장을 본 아이들과 접선 후에 출발했다. 이 비는 일요일 새벽까지 왔다 갔다 하며 내리며 나름 즐거웠다. 빗소리와 비 맞는걸 즐기는게 아직은 좋은 나이랄까나. 준호네 별장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작년에 이어 선녀탕에 가서 샤워 한판 해주고 노래방기계에 죽치고 않아 노래를 불렀다. 준호가 별의 별 술을 다 꺼내들어와서 이게 술인지 약인지 모르겠더라. 그 중 하루 한잔 이상 마시면 안된다던 (말)벌꿀술.. 그거 땜시 온 몸에 열이 나서 맹과 나는 몸부림쳤다[..]

다음 날, 빗속을 해치고 동해로 달려가 무한도전을 보겠다던 목표가 비 안오는 바다를 보자마자 뛰어든 덕에 무산되었다. 바다는 얼음장 처럼 차가웠지만 물놀이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다시 저녁에 고기를(또..) 구워먹고 모두들 골아 떨어졌다. 술을 마시려 다들 노력했지만 달랑 사온 소주6병은 반병도 못비우고 남았다. 혼자 티비앞에서 심슨올나잇을 보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중학교 테니스장에 숨어들어가 고기 구워먹으며 맥주 두병 몰래 가져와 나눠먹던 고딩들이 매 분기별로 차타고 놀러다닐 줄 누가 알았을꼬.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간에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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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Naskaz, 탁, 장컴, 맹, 민성, 날작

드디어 마지막 날,(내가 잠든지 세시간 후, AM9:00) 바닷가에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잠에서 꺴다. 깼다라는 표현보다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다 개어버렸기 때문에…거기에 여행 출발하고 나서 처음보는 햇빛은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12:00 체크아웃이니 일찍 오전에 갔다 와서 샤워하고 집에가자! 그것이 계획..민성과 맹은 개인적인 볼일들로 돌아가게 되고 남은 5인은 그렇게 바닷가로 향하게 된다. 다가올 끔찍한 미래도 모른체……

해수욕장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이 솟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정상적인 나의 체력으론 불가능한 일이고, 아마도 벌꿀술이 여기서 힘을 발이 한것 같다. 애들에게 12시는 되야 물 따뜻해지니 그때 가자고 잠 좀 더 자자고 투정부리던 나는 그로부터 여섯시간을 쉼없이 파도속에서 둥실둥실 놀았다. 물 차갑다고 옷갈아 입고온 Naskaz도 또 다시 돌아가 갈아입고 튜브까지 빌려오는 투혼 속에서 신이 났다. 다른 애들은 쉬엄 쉬엄 하며 노는데 나 혼자 인어공주인마냥 수영도 못하면서 바닷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며 놀다보니 세시 반..아쉬운 맘을 놓고 서울러 갈 준비를 챙겼다.

돌아 오는 길, 올것이 왔다. 다들 벌겋게 타오른 살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비명을 질렀다. 썬크림을 잊고 놀았던 응분의 댓가다. 햇빛을 보고 광분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논 탓이다. 내 얼굴은 머리색과 같은 색이 되어버렸다. 우월한 탁님만 썬크림을 잊지 않았지만 그 외 나를 비롯한 비치 보이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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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19 규빈 망상(해수욕장)

글과 그리고 글

글쓰는 일이 뜸해졌다. 이는 최근들어 깊게 생각하는 일이 뜸해 진 것과 거의 일치한다. 또한 핸드 북을 가지고 다니며 적거나 스캐치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과도 거의 일치한다. 하루종일 드라마만 보고 있어도 드라마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방금 30rock 시즌3를 하루에 다 봤다고 해도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잊을 것이란 것이다.(미국 시트콤이기 때문이지! 라고 핑계대고 싶다!!)

굉장히 오래라고 쓰려고 했었는데 그리 오래동안은 아니었을지 모를 글쓰는 공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켜볼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다시는 생각할일이 없겠지라고 느꼈던 혹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살 수 있을 꺼라고 믿었던 자만심에 의해 사라져 버린 내 과거였다. 컴퓨터로 인터넷이란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할 만큼 클릭 몇번으로 없어진 기록이었다.

남기려 했던 백업파일은 내가 기억하는 한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못하고 맥북에서 맥북프로로 옮길 때 사라졌다. 패러럴즈에 있던 8기가정도 되는 대용량 파일시스템을 FAT외장하드에 백업할 수 없었던 탓이다. 물론 그 파일안에 그 파일이 들어가 있었을 줄은 한참 후에나 깨달았지만 말이다.

그 덕에 글쓰는 일이 줄었다. 생각하는 시간이 짦아지니 앞뒤옆으로 길고 넓게 펼쳐져있던 생각의 범위가 줄어들었다. 아무리 귀중했던 물건이라도 시간이 지나서 지금 쓰고 있지 않고 잊혀져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일주일이면 잊혀질 단편적인 느낌과 지식들을 남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슈퍼킹(패밀리게임기카피머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원을 넣고 패드를 누르지 않는다. 안테나 케이블로 티비에 연결하던 그것 대신에 Wii가 비디오오디오 케이블과 위핏 위에서 눈차크를 휘두른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다 그런 것들이다. 아무리 아껴도 모든 시간을 안고 살 수 없는게 나였다. 새로운 것이 오면 그 전의 새로운 것은 끝나버려 있었다.(덕분에 끔찍히던 만화책을 똥탐할때 한권씩 꺼내가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손으로 글을 굉장히 오래 써왔다. 내가 황야를 걸을 때, 엄마가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짙은 녹색의 노트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장이라고 했었던가, 난 반항심99%와 1%의 호기심사이에서 읽지 않았고 곧 엄마는 그것을 버렸다. 얼마전 아빠의 퇴출 소식을 들으며 아빠가 입원해 있던 기간 동안 엄마가 썼던 노트를 찾아보았다. 다시 열어보는데는 실패했지만(버렸나..?!) 언젠가 내가 책장 정리 하다가 찾아낸 그 노트에서 본 엄마를 지금의 엄마가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들은 굉장히 오래된 개인의 과거의 기록이었었다. 쓰지도 않는 것을 손에 쥐고 등에 진 것을 놓아야 한다던 마음이 느껴 진다. 한 줄 읽어보지 않은 그 푸른 노트 안이 이제서야 궁금하다.

컴퓨터에 클릭 몇번에 지워졌다고, 점점 더 편해지는 세상 탓을 하는 내가 갑자기 우스워진다. 더 예전엔 불 펴놓고 한장한장 태우다가 노트 통채로 불안에 던져버리지 않았던가.(이러한 고전적인 방법으로 제대하자마자 외국에 나가서 안돌아와서 예비군 갈일을 없게 만들어 더 이상 군복을 안입고 한강변에 가서 군복을 태우리라 생각했으나 계획처럼 삶이 진행되고 않고 있다..)  그때는 글을 남기는 방법이 오직 쓰는 것이었고 태우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유일한 길이었지 않던가. 그리고 다음 날 찢어진 조각 찾으러 와서 뒤지고나 있고 말이다(드라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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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시절 내 첫 번째 핸드폰 스캔한 . 참 많이 집어던진 폰이었다. 그래도 참 튼튼했던, 미안한 녀석.


*외장하드가 옆에 보이길래 껴봤더니 1999년도 파일까지 있다..[..]

어제 본걸 일주일 후면 잊을텐데 그것을 위해 글을 써야 하야 할지 고민하며 블로그에 제목만 적어놓고 임시파일로 두는 일에서 벗어나야겠다. 질풍같았던 시절의 글들은 사라져버렸지만, 안고 들쳐보며 생각할 시간이 내가 살아가는데 스며들어 있지 않은가. ‘한발짝 뒤로 물러나 보자’ 그 동안 항상 되뇌이던 말인데 이번에도 한발짝 물러나는데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과 성찰 뒤에 다짐도 이어지지. 이래서 아직도 사람이 진화하지 못하고 팔과 다리에 한쌍씩 밖에 없는 건가보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