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에 떠난

을지로 제작소에서 온 전화로 잠을 깨고 부동산 연락에 침대에서 나왔다. 라면을 끓이며 서서 마시며 워크샵 문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남은 돈을 세가며 인터넷으로 재료를 구매하고 집을 나선다. 차를 끌고 도착한 을지로는 주차할 공간이 없어 한바퀴 돌고 나서야 자리를 찾는다. 제작소에서 못하는 부분은 빠르게 포기하고 더 쉽고 간단한 디자인으로 변경한다. 직접하기 졸라 힘든 스텐에 80개 구멍을 뚫어달라 요청하고 5만원 오른 견적서를 두고 아주 짧은 생각에 빠진다. 그냥 내돈으로 할까. 사장님이 뭐하러, 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바로 옆 아크릴 가게에 들러 견적을 확인하고 주문을 완료한다.다시 차를 타기 바로 직전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다. 계약금 언제 보내냐고, 지금 바빠서 잊었는데 작업실 가면 보내겠어요. 다시 차를 몰고 작업실 근처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장 주인에게 새벽 4시에 나갈꺼라고 미리 계산하자고 하니 그러라한다. 트렁크에서 꺼낸 재료들을 쌓으니 1m는 족히 넘는다. 핸드카에 차곡히 쌓아 조심조심 들고 4층까지 올라간다. 한번에 못올라가서 3번에 걸쳐서 올라갔다.

마스크를 벗고 크게 숨을 들이키며 잠시 앉아 채팅방을 본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멍해있다 CNC를 돌려보니 난리가 난다. 나무 홈을 파고 그 안에 판을 두고 하기로 계획한다. 기계야! 너는 일해라! 나는 저녁 밥을 먹으러가겠다! 용문갈비 집에 가서 현박님과 마주 앉아 갈비탕 특을 먹었다. 상철형과 같이 셋이서 처음 갈비탕 먹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시간이 지났다. 한명은 아버지가 되었고 한 명은 결혼을 하고 캐나다에 있다. 남은 나는 크게 변화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은 느긋히 급하게 찌고 몸도 그때 같지 않다. 세월이 지나고 변화하는 복판에서 딱히 무엇 하나 손에 쥘 것 없이 걷고 있다. 많은 걸 가지게 되었지만 뭐가 없던 어릴 때보다 오히려 가진 것에 미련이 작아졌다. 여전히 돈도 많았으면 집도 있었으면 하지만 닿지 않을 것 같은 것에 대한 것은 포기하게 되는 순간을 지나친 듯 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삶의 목적은 복잡해지고 내용이 많아진다.

다시 작업실에 올라와 돈을 어떻게 쓸지 회의를 하다 아까 낮에부터 통장사본과 캡처 파일을 보내달라고 한 선구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더해(보이진 않지만)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춫을 돌린다. 역시나 시대의 현자 현박님 남기고 간 두 개의 지혜 덕분에 고맙습니다. 숨만 쉬며 일하다 새벽 4시가 땡하고 모든 것을 다 끄고 집으로 왔다.

이제 씻고, 잠시 떠난 그녀를 좀 더 생각하고 나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cnc도면을 큰 모니터로 완료하고 오도방을 타고 작업실에 가서 밤을 새서 다 뽑고 집에 내일 아침 6시쯤 돌아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삶은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흘러가는 중이다

지난 2월 마지막 날 새벽에 전해들은 세 모녀의 자살은 굉장히 날 슬프게 하였다. 죄송하다며 월세를 봉투에 넣어두고 세상을 등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면 할 수록 가슴은 찢어졌다.

이 이기적인 사회를 어찌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명박 뽑은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이명박 뽑고 박근혜를 뽑은 인간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갈 자격이 없다.” 는 것이다. 철저한 자신의 개인적 이익만을 대변하는 상위계층부터 ‘신’처럼 떠받드는 무지랭이들까지 그들에게 “자유” 라는 단어의 가치는 돈으로 귀결되는 천민자본주의 뿐이다.

우리가 용산참사와 쌍용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내 이웃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의 횡포로 부터 나를 지켜줘야 할 국가가 배신을 하고나면 기댈 곳은 있는가.

비정상적인 자본의 수직관계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경하는 이상으로서 삶의 목표가 주어지고 생의 도착점이 되어버린,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추구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너와 나의 사회속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배와 같다. 아직 채 가지지도 못하고 피지도 못한 죽음이다. 분노하고 또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오늘도 흐른다.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의미조차 희미한 친구들에게 “좌빨”로 불리던 나의 의지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라졌다. 51.6% 지지자들에게 묻는다. 너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돈은 아이들을 구해낼 만큼 충분한가. 외면하지 말고 당신이 던진 표에 너는 책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