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ever, whe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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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과 집 거실에서. 포토부스.


하나.
Dr.K 도현이 시드니에 왔다가 갔다. 아크로스 모임이 지속되면서 -비록 광남고에 있는 모든 써클이 학교공부라는 이름 하에 제거되어진다 하여도- 몇 년전 부터 시작한 말이 있다. 언젠가 우리 모임은 한국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 중 한군대에서 모이자고. 물론 누가 기억할지는 장담은 못하지만.

호주에와서 영어가 딱히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내 전문 기술 숙련도가 올라간 것도 아니지만 지구본을 볼 수 있는 마음 가짐 하나는 생긴 듯 하다. 짧은 여행속에서 스쳐가듯 보고 다닌 건물들이 아닌, 다른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에 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이다. 내가 당장 내 방세를 위해 손을 잘라먹어가며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즐겁다.

삶은 지속적으로(everyday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새롭게 시작되고,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하다. 내가 대학을 가지 안겠다고 했었을 때, 엄마가 말을 했었다. 또래들과 나이대에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내 마음속의 타의든, 자의든 한국의 대학의 줄서기 교실과 강의실에서 빠져나옴으로서, 그 과정에서 내가 볼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으며 깨달으 수 있었고 그리고 행동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재미있다.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던 시절, 그 때도 나는 “재미가 없는 일은 할 수가 없다.” 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대답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만 할 수가 없다, 너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것이다” 였다. 내가 생각해냈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누군가가 생각을 하고 말을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볼때, 나도 저 의견에 동의할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언포츄너리(..)한 것은, 시간은 지금도 지나간다는 일이다.

둘.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들의 모임, 아빠의 시골친구들의 모임, 다들 그 어린시절에서 떠나 성장한 후에 다시 만나 그 세월의 간극 속에서 추억을 이야기 하곤 한다. 나이가 먹는 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세대에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누군가와 보지 않음으로서, 못함으로서 자연스럽게 헤어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헤어짐의 성숙을 갖는게 어려워진 것이다.

4학년 이후, 처음 만난 사이의 아이들 부터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언제든지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니들은 내가 놓친 그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과거보다 좀 더 오랫동안 누군가들과 연결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는 나와 우리들은 그로 인해 과거에 비해 정신적인 성장이 더디다고 할 수 있을까.

유치원 시절의 (류?유?)상록이(극동아파트 8동, 비디오가 집에 없던 시절, 피아노 학원끝나고 그 녀석 집에 가서 볼트화이브를
빌려와 같이 보던)와 강성찬(극동아파트 10동에 살던, 내가 맨날 놀러가서 재믹스를 하며 놀던 곳, 양배추 인형 나의 그시절
가장 좋아하던 게임)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 녀석들은 나를, 그 애니메이션을, 그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헤어짐의 성숙함을 잃어 가는 대신에, 연결됨과 이어짐에 대한 인연의 무게를 지고 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4 thoughts on “Whenever, wherever

  1. 보고싶다.
    재미있다는 것은 호기심이 계속 발동한다는 뜻이니까 괜찮구만.

    재미가 있어서 하는 일의 단계를 지나 해야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지혜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은……

    몸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2. 살코기 잘라먹었니?
    이제 나이가 있어서 잘 복귀 안된다구, 조심하라규~ㅋㅋㅋ
    난…간신히 나태해지지 않는 정도로만 살아가고 있다;후;;

    • 여기서 술을 먹지않으니깐(이라고 쓰고 돈이 없어서라고 부연설명)
      치유가 잘돌지도 몰라. 근데 뱃살은 정말 안빠진다;;;
      난 나태해 나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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