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일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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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부인 회의가 늦게 끝나고 거기에 이어폰을 수선관에 두고 나와서 정문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내 생일은 따뜻한 방안에서 모니터를 켜놓고 시작할 수 있을 꺼라 기대 했었는데 전혀 틀려먹었다. 수선관에서 두번을 내려가며 넘어질뻔하기도 하고 주춤주춤 하며 겨우 혜화역에 내려오니 11시 50분이다. 10분 동안 밖에서 기다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언제 끊길지 모르는 지하철에 대해 걱정하며 생일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에 내려가 지하철 안에서 생일을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12시가 되어 난 지하철을 타지도 못한 상태로 플렛폼에서 생일을 맞이 하였다.
피앤그에서 모여있다는 날작 공필 장컴미에게 합류하기 위해 5호선이 아닌 2호선을 타고 가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다. 이어폰을 두고와서 다시 올라가며 “참 운이 없네” 라는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울린다. 오늘은 참 운이 없을 꺼 같다는 느낌이 엄습해 온다.
아주 긴 퇴근을 앞두고 서울에 올라온 공필이 쿨하게 피앤그를 정리할 때 쯤 장춘 컴미 선생께서 커피를 마시자는 제안을 새벽 2시에 하셨다. 아직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도 연애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습관 처럼 공연에 여자 데리고 오라는 말을 공필에게 하였지만 늘 그렇듯 야릇한 웃음으로 내가 여자가 어디있어를 말하는 공필까지는 참 일상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일상은 장춘 컴미 선생께서 “날 챙겨야지”(이런 분위기였었던가)라고 일갈성을 날리셨다. 꼭 보러 오라고 말은 하였지만 사실 현실감이 와닿는 것은 아니다. 생일이 되자마자 우연찮든 아니든 생일 축하를 받고 나니 좋쿠나.
따땃하게 잠을 자고 나서 일어나 군대와 외국에 나가있을 때를 제외하고(아마 내가 집에 없어도 엄마가 했을지도 모름) 조상에게 차리는 밥상을 올리고 그걸 또 먹는다. 해가 지날 수록 비는 소원들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기 보다 건강하기 바란다는 간결함을 유지한다. 바리바리 빌어도 안되는거 집중하자.
이걸 위해 하루 늦게 부산에 내려가는 작은형에게 감동과 감사를 전합니다. 올해 촛불은 한번도 끊기지 않고 한번에 다 불어 제꼈다. 남 생일 케이크에는 한번에 못불게 쫘악 심어버리지만…밥상과 케익. 참 조화롭구나. 운이 없게도 오전에 있기로한 브런치 계획은 고이 접어두고 다음 계획을 향해 준비한다.
인천가는 일을 정말 싫어한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인천에 갔을 때, 그곳은 너무 더워서 숨쉬기도 힘든 곳이 었다. 그게 ‘인천’ 이라는 인식으로 박혀서 첫째로 싫었다. 그리고 서울 동쪽 끝인 우리집에서 서쪽 끝인 인천은 지하철을 타도 굉장히 힘들게 가야하는 곳이었기에 갈일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재준형과 혜진누님의 결혼식. 왜 하필 내 생일날에 결혼을 하는 거시여…집에서 왕복 4시간은 가야할 거리인 송도로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다. 1시간 반정도 걸려 인천대입구역 앞에 내려주네.
송도 컨벤션 센터에서 예식을 하는 풍경. 꽤 규모가 큰 결혼식이었다. 시간은 3시로 좀 애매한 시간이었다. 상철형과 조하씨와 함께 식을 보고 밥을 먹었다. 특이하게 식이 끝나야 밥을 준다고 하는 구나. 테이블 식이라서 테이블로 세팅이 오나 했는데 1부(?)가 끝나자 뒤쪽에 바련된 부페로 몇백의 사람들이 몰렸다. 참으로 무서운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틈에 요리조리 음식을 가져와 어느샌가 배터지게 먹었다. 시간상으론 아점 다음에 점저로 넘어가는 좋은 타이밍!
대충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가는데 동서울행 버스가 슝하고 지나간다. 매표소에 갔더니 그게 오늘의 마지막 버스 4시반. 그것만 타면 집에 바로 갈 수가 있었는데…운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을 타고 인천종합터미널에 내려서 동서울행 시외버스를 탄다. 예전에 아르바이트 하러 왔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버스 잘 못 타서 부둣가에 떨궈져 몇 킬로미터를 걸어갔었던 그날. 그렇게 서울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고 생일은 다섯시간 밖에 안남았더라. 통채로 생일이 사라졌다.
집에 도착하니 서영이를 빼고 삼촌 숙모 홍주 셋이서 놀러를 왔다. 새해가 되어 처음 뵙는거니 절도 하고 겸사겸사 반 강제로 생일 축하 노래도 듣는다. 그에 대한 작은 답례로 집안 극장을 만들었다. 스크린까지 설치는 못했지만 나름 벽에 쏴서 봐도 볼만 하다.
10시부터는 3일이 생일이었던 수현이, 현상, 정환 그리고 쥬다스 프리스트 공연을 보고 뒤늦게 합류한 와우만 하는 승진이와 함께 매너농구단 생파 모임을 하였다. 딱히 뭐가 있다기 보다 그냥 LOL을 하러 게임방으로…희안하게 12시가 땡하고 생일이 지나자 마자 게임이 잘풀린다. 운없는 생일 날의 저주가 끝난 기분이랄까나. 압권은 마지막 판. 그 전판에 우리를 깨끗히 발라먹고 조롱까지 헀던 팀을 다시 만나서 리벤지 매치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깨끗히 우리가 발라줬다. 진성이가 우리가 전판에 받았던 조롱을 그대로 돌려주며 흐흐.
그리곤 바로 옆에 24시간 하는 설렁탕집에 가서 2그릇과 순대볶음을 시켜서 나눠먹고 옛날에 많이 먹던 시절 있었던 사건사고들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 집에 들어오니 4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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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을 다쓰고 나니 5시다.
이건. 2012년 내 생일에 있었던 일들을 단편적으로 모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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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2월 5일의 기록.
이번 생일시즌에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 건대입구역 롯데몰 안에 맛난 카레를 먹으며 받은 편지와 아이폰4s용 hdmi 어뎁터! 이것으로 인해 프로젝터에 연결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컴터 없이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똥꼬님에게 무한한 영광과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