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illion Dollar Baby (밀리언 달러 베이비)

군대 있을 시절부터 봐야지 봐야지 해놓고서 목록에만 올려 놓았던 Million Dollar Baby를 도서관에 가서 DVD로 봤다. 동네에 이렇게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일지도.

"To find a product which worth a million dollars from a store that sells everything at 1 cent."

여러가지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을 하는 듯한데, 일단은 마지막 경기가 밀리언달러 매치였다는 것. 손님이 남기고간 음식을 몰래싸가지고 가서 먹으며 팁 2불에 행복해 한고 1cent 동전이 가득한 돈을 모아서 원하던 것을 사는 모습을 통해, 1 cent가a million dollar 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아주 조금이라서 스스로 보이지않더라도 결국은 쌓여가는 것을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열정은 배울 점이 많다


영화에 대한 무슨 특별한 정보를 가진 것은 아니였고 그저 아는것은 복싱에 관한 이야기 라는 것. 그래서 영화가 두번째 단계로 넘어갈때까지 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런 무감각적인 스포츠 물을 보았는가…라던지, 이쯤되면 주인공이 한차례 좌절하고 나서 결국엔 챔피언에 등극하지 않겠어? 그것은 Maggie가 다리를 자르기 전까지 지속되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착각속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다리를 자르고 난 후 바로까지, 어랏 의족끼고 챔피언이 되는 그런 영화인가. 라고 생각했으니 이로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해 부끄럽다.

그것이 바로그리고 보는 내내 신경쓰였던 것은 Frankie와 Maggie의 관계는 어떻게 넘어가는 것일까. 한국어 자막으로 보자니 뭔가 해석들이 조금씩 틀린듯하고 그렇다고 영어로만 듣자니 부족하고 그래서 영어자막으로 볼까 했는데 용기가 부족한 탓이지만(시나리오 찾아보고 있음;). 모쿠슈라 라는 말이 내내 궁금했는데 “내 소중한 혈육” 이라고 말하더라. 그러니깐 기존의 가치관에서 대체할 단어를 찾으면 “가족”이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영화속의 Maggie의 가족은 이미 기존의 가치관에서 말하는 마음의 안식처의 개념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보내는 편지마다 반송되어 오는 Frankie와 그의 딸의 관계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둘의 관계를 가족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가까운 그리고 소중한 인연이였으리라. 그것이 바로 “뜻 밖의 순간에 행운처럼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 는 뜻처럼 세 사람의 만남을 이야기 하는 Million Dollar Baby 다.

결국 이 영화는 복싱을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인생을 반추하고자 했던 여타의 다른 복싱영화와는 달리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는 내내 착각에 빠져 있던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것을 깨달았으니, 에고고. 자만이여 교만이여.

"샌드백을 샌드백이라고 생각하고 때리지 말고 사람이라고 생각해야해"

내 인생에 Million Dollar Baby 의 만남은 아직 일지도 모르고 이미 일지도 모른다. 다들 인생에서 Frankie처럼 Million Dollar Baby라고 믿었던 만남을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으로 대해 헤어지게 되기도 하지만, 또한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진정한 Million Dollar Baby 를 찾을 수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완전 비열한 악역을 한번 시켜봤으면...Lucky Number Slevin에서 악역이라는데...


영화 대사들 중에는 우리 삶에 진리처럼 받아 들여지지만 잘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녹아 있다. 뭐 일단 집을 사라던지(…)
아 그리고 만약에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확인해 보고 싶은게 있다. 셋이서 이야기 하는 컷이 한컷이라도 있었던가…기억나는건 두명이 이야기 하면 한명은 배경속에 녹아 있다던지 그런것 밖에 기억이 안난다. 아…처음 시합이 끝나고 셋이 나오는 부분이 있구나.

[영화] 誰も知らない : 아무도 모른다 : Nobody Knows

드디어 영화를 봤다.
몇 번이나 시도 끝에 시작하지 못했지만 널직한 강의실의 프로젝트로 혼자서 봤다.
보는 내내 가슴을 억누르던 기분에서 벗어나자 마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당황했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그 아무도 몰랐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야구 감독도 아랫집 식구들도 윗집 주인도. 편의점 주인도. 아니 모른게 아니라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신경쓰려 하지 않았다. 그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들키면 헤어지게 될까봐 조심조심 했지만, 보란듯이 다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한창 고등학교 시절 세상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면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메신저를 안들어 갔다. 발적처럼 찾아오는 그 기분 때문에 핸드폰 번호도 많이 바꿨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쯤 지나고 나면 사람들에게 다시 번호를 알렸다. 양치기 소년 거짓말하듯이 내가 그렇게 행동을 반복되면 될수록 별로 신경을  안쓴다. 그것은 “쟤는 원래 저런 애구나” 라고 생각해 버리게 되니깐. 그리고 나서는 일주일동안 어디갔었느니 무슨일이 있었느니 하는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들은 관심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워지고 신경을 덜쓰게 된 것일뿐이지 끊어지거나 모르는 문제들이 아니다. 누군가의 그런 문제에 다가 갈려고 하면 자신의 들어내고 싶지 않은 문제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데 굳이 어려워하는 문제에 나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혹시 그런 경험 한적 없던가, 나는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는 것.


아무도 모르는게 아니다.
아는 척을 안하는 것 일뿐.


실제 있었던 사건과 비교해보면 뉴스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감독은 모티브를 따왔을 뿐이라고 하긴 하다만…..